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독서


신입생때 읽었던 책. 그리고 저자가 좋아서 저자의 책들은 모두 찾아서 읽었었다.
주옥같은 표현들이 정말 많고, 어떤 말들은 몇번을 되뇌어 읽고 천천히 생각해야만 깊이를 이해할 수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속에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하지만 저자가 감옥에 오랫동안 지내면서 찬찬히 사색들로 일궈낸 깊이들은
되려 빠르게 움직이는 우리가 무얼 위해 빨리가려고 하는지 이를 통해 무엇에 도달하려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어제 초등학교선생님이 제자를 어찌어찌한 안타까운 사건이 전파를 탔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선생님 자신의 앞길을 영영 망쳤고, 한 아이의 인생에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 아이에게 앞으로 만나게 되는 선생님들은 어떤 존재들로 다가올까.

전적으로 기댈수 있는 완전무결한 인간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의 나의 지론이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애석하게도 그것을 깨닫게 되는 일련의 과정며, 우리는 모두 스스로가 깨어진 존재이며
눈앞에 있는 사람이란 존재들 또한 그렇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존재일지언정 작은 존재들 앞에서는 사뭇 의지가 되는 어른 같은 존재들로 비춰주어야 한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애쓰고 또 애써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고단하고 지치고, 울고 싶을때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격렬 보낼수 있을것 같은 그런 어른이다.

토닥임을 받고 싶은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다.


<밑줄 줄긋기>

불사춘광 승사춘과, 봄빛 아니로되 봄을 웃도는 아름다움이 곧 가을의 정취라고 합니다. 그러나 등 뒤에 겨울을 데리고 있다 하여 가을을 반기지 못하는 이곳의 가난함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p.41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이백은 호지에 꽃나무가 없어서 봄이 와도 봄답지 않다고 하였지만 이곳에서 느끼는 불사춘은 봄을 불러 세울 풀 한 포기 서지 못하는 척박한 땅 때문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우리와 우리 이웃들의 헝클어진 생활 속 깊숙이 찾아와서 다듬고 여미고 북돋우는 그런 봄이 아니면 '4월도 껍데기'일 뿐 진정한 봄은 못되는 것입니다. p.46

*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깨닫도록 은밀히 도와 주고 끈기있게 기다려 주는 유연함과 후덕함을 갖추는 일입니다. 이런 경우는 주장과 주장의 대립이 논쟁의 형식으로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잘 아는 친구가 서로 만나서 친구 따라 함께 강남 가듯 춘풍 대아한 감화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군자 성인지미, 군자는 타인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며, 상선 약수, 최고의 선은 순조롭기가 흡사 물과 같다는 까닭도 아마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p.53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그 판단의 주체가 또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 눈이 달리기 마련이고 자신의 그릇만큼의 강물밖에 뜨지 못합니다. 이러한 자신의 제한성과 특수성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는 한 자기의 생각과 견해를 넓혀 나가기는 몹시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p.79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몸소 겪은 자기 인생의 결론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사상을 책에다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조잡하고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상은 그 사라의 삶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는 무지하면서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려는 것은 무용하고 무리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p.83

오늘은 다만 내가 읽은 어느 시나리오의 대사 한 귀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려 합니다. 이 귀절은 한 여인이 그 사람을 자기의 반려자로 결심하게 된 이유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Because I really conceived that I could be a better person with him

그 여인은 '그이와 함께라면 보다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같기 때문에' 그와 일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우상을 깨뜨리고 인간의 진실을 꿰뚫어보는 뛰어난 통찰이며 양심이라 느껴집니다.p.96


같은 수의를 입고 있는 우리들끼리도 처음 대할 때는 영락없는 '범죄꾼'의 첫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같은 취업장이나 같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안 그 사람의 처지와 사정을 이해하고 나면 그에게서 느끼던 첫인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던가를 뉘우치게 됩니다. 청의 삭발이 얼마나 험악한 인상을 만들어내는가를 절감케 합니다. 이처럼 의상과 사람의 괴리를 수없이 경험하면서도 우리들 자신이 아직도 의상의 허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강고한 철갑 외피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p.100

교도소에는 갖가지 흉악하고 파렴치한 범죄인들이 모여 있어서 분위기가 살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함께 살아 보면 저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비행을 저질렀을까 싶은 정도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딴판인 사람이 무척많습니다. 그의 죄명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경우바르고 얌전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이 없어지고 나면 폭력과 비리와 패륜도 흡사 바람 빠진 풍선처럼 무력해지고 이빨 빠진 맹수처럼 무해한 것이 되어버리는가 봅니다. 생존을 위한 또는 치부나 허영을 위한 과도한 추구가 모든 폭력과 비리의 근거가 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p.105

그 많은 싸움들을 보고 느낀 것입니다만, 싸움은 큰 싸움이 되기전에 잘게 나누어서 미리미리 작은 싸움을 싸우는 것이 파국을 면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싸움은 잘만 관리하면 대화라는 틀 속에서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책은 못되고 중책에 속합니다. 상책은 역시 싸움에 잘 지는 것입니다. 강물이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 결국 바다에 이르는 원리입니다. 쉽게 지면서도 어느덧 이겨버리는, 이른바 승패의 변증법을 터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진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기기보다 어렵습니다. 마음이 유해야 하고 도리에 순해야 합니다. 더구나 지면서도 이길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이 경우에 어긋나지 않고 떳떳해야 합니다. 경우에 어긋남이 없고 떳떳하기만 하면 조급하게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도 없고, 옆에서 보는 사람은 물론, 이긴 듯 의기양양하던 당자까지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완벽한 승리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러나 이것도 싸우지 않는 것만은 못합니다. 싸움은 첫째, 싸우지 않는 것이 상지 상책입니다. 그 다음이 잘 지는 것, 그 다음이 작은 싸움, 그리고 이기든 지든 큰 싸움은 하책에 속합니다. p.119

부드러운 능선과 오뉴월 보리밭 언덕이 내다보이는 창은 우리들의 메마른 시선을 적셔 주는 락은 샘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창문'보다는 역시 '문'이 더 낫습니다. 창문이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p.142

사람의 아름다움도 이와 같아서 타고난 얼굴의 조형미보다는 은은히 배어나는 아름다움이 더욱 높은 것임과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첩경과 행운에 연연해하지 않고, 역경에서 오히려 정직하며, 기존과 권부에 몸 낮추지 않고, 진리와 사랑에 허심 탄회한...그리하여 스스로 선택한 '우직함'이야말로 인생의 무게를 육중하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p.144

깊은 밤에는 별이, 더운 여름에는 바람을 거느린 소나기가 있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의 위안입니다. p.145



사람은 나무와 달라서 나이를 더한다고 해서 그저 굵어지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젊음이 신선함을 항상 보증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노가 원숙이, 소가 청신함이 되고 안되고는 그 연월을 안받침하고 있는 체험과 사색의 갈무리 여하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해마다 거리낌없이 가지를 뻗는 나무는 긴 가지 넓은 잎사귀를 키워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뻗다가 잘리고 뻗다가 잘리는 나무는 가지도 안으로 뻗고 가시도 안으로 세우는 '서슬 푸른 속이파리'새하얀 꽃의 탱자나무 울타리가 됩니다.

탱자나무는 금빛 열매도 품 속에 감추어 가시에 찔린 소년을 울게 합니다.

"길가는 사람들은 마음씨 상냥했어요...."
소년을 위해서 걸음을 멈추고 탱자나무 가슴을 열어 주었습니다.
활엽수의 시원합과 탱자나무 울타리의 튼튼함을 아울러 가지려는 것은 아직도 욕심으로 인생을 보는 어린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얼름 시름 안 풀려도 강물은 흐르고', '동지 팥죽 안먹어도 나이 한 살 더 먹네.'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또 새로이 맞이할 때에는 세월의 흔적이 자기에게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먼저 묻고, 그것에 걸맞는 열매를 키워가야 하리라 믿습니다.
p.151

'지'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가 진리의 존재는 파악하였으되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로 보는데에 비하여 '낙'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되기도 하빈다.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 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그 즐거움은 놀이이며, 궁리는 학습이고, 만들어내는 행위는 곧 노동이 됩니다. p.166


실천->인식->재실천->재인식
의 과저이 반복되어 실천의 발전과 더불어 인식도 감성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으로 발전해 갑니다.

독서는 실천이 아니며 독서는 다리가 되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역시 한 발 걸음이었습니다. 더구나 독서가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까닭은 그것이 한 발 걸음이라 더디다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인식->인식->인식...'의 과정을 되풀이하는 동안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현실의 튼튼한 땅을 잃고 공중으로 공중으로 지극히 관념화해간다는 사실입니다.

실천이란 반드시 극적 구조를 갖춘 큰 규모의 일만이 아니라 사람이 있고 일거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흔전만전 널려 있다는 제법 익은 듯한 생각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p.181

남의 집 방 한 간을 얻어 세들어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는 이처럼 아내를 또는 남편을 세들어 사는 그런 삶도 없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의 세상에 인생을 세들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아내나 남편을 세들어 사는 사람들보다 더욱 불행합니다. p.184


문자를 구하는 지혜가 올바른 것이 못됨은, 학지어행, 모든 배움은 행위 속에서 자기를 실현함으로써 비로소 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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